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피 프리데리케 (문단 편집) == 악독한 시어머니 == 조피는 맏며느리이자 조카[* 여동생 루도비카 공주의 딸이다.]이기도 한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피는 엘리자베트의 첫 아이인 공주의 이름을 상의도 없이 자신의 이름을 딴 조피 프리데리케라고 짓고 자기 거처에 데려가 기르면서 엘리자베트와의 고부갈등은 극에 달했다.[* 다만 다른 며느리들인 [[벨기에의 샤를로트]]나 [[마리아 안눈치아타]]와는 사이가 매우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엘리자베트가 둘째딸 [[기젤라 루이제 마리|기젤라]]를 출산하자마자 마찬가지로 마음대로 이름을 짓고 자신이 데려가 길렀다. 너무 어린 며느리가 의심스러웠는지 조피 대공비는 엘리자베트가 딸들을 보는 것 외에는 어떤 조치도 하지 못하게 간섭했다. 결국 엘리자베트는 공개적으로 아이들의 양육을 놓고 시어머니와 싸우기 시작했고 시어머니의 반대에도 딸 조피와 기젤라를 [[헝가리 왕국]]으로 데려갔다. 여기서 딸 조피가 죽는 바람에 실의에 빠진 그녀는 아이들 양육에서 완전히 손을 놓고 황태자 [[루돌프 프란츠 카를 요제프|루돌프]]를 출산한 후 기젤라와 루돌프 둘 다 조피 대공비가 데려가게 내버려뒀다. 우울증에 빠진 엘리자베트는 꼴보기 싫은 시어머니 곁에 있는 아이들에게마저 일생 관심을 끊어버렸고, 이는 루돌프와 기젤라에 대한 무관심과 막내딸 [[마리 발레리 마틸데 아말리|마리 발레리]]에 대한 편애로 이어진다. 실질적으로 손주들의 양육을 담당한 조피 대공비는 장차 황제가 될 루돌프가 7살 때부터 군대식 보육교사에게 가르침을 받도록 했다. 어린 루돌프는 총소리에 놀라 기상, 차가운 눈발 걸어가기, 찬물 끼얹기, 혼자 내버려두고 알아서 집까지 돌아오게 하기 등, 7살 아이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교육 속에서 자라면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 루돌프의 우울증에는 이런 가혹한 환경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외가 [[비텔스바흐 가문]] 사람들에게는 우울증, 광증 등의 유전적 정신병력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루돌프가 받은 저 가혹하기 그지없는 교육은 정신병력 없는 집안의 애들도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의 환경이었던지라 결국 루돌프에겐 온갖 스트레스성 정신 증상이 나타났다. 부모인 프란츠 요제프 1세는 격무에 시달린 데다가 엘리자베트는 자신의 정신병 때문에 여행을 빌미로 밖으로만 나돌았기에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는 어린 손자를 친할머니가 후계자 교육이랍시고 [[학대]]한 셈이다. 그래도 어머니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엘리자베트]]가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이에 대해 프란츠 요제프에게 강력히 항의했고, 그런 아내에게 탈탈 털린 프란츠 요제프 1세도 이를 수락하여 조피 대공비를 설득시킨 끝에 교관을 관대한 사람으로 바꿨다고 한다. 하지만 루돌프 황태자는 계속되는 아버지와의 불화와 어머니의 무관심에 지쳐 결국 애인인 마리 폰 베체라와 함께 사냥용 별장 마이어링으로 밀월여행을 가서 동반자살했다. 이 동반자살 사건은 이후 '마이어링 사건'으로 언급된다. 이런 가정사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는데, 이름뿐인 멕시코 황제 자리에 올랐던 차남 [[막시밀리아노 1세]]가 총살당했다는 소식까지 들어야만 했다. 제일 사랑하는 아들 막시밀리안의 부고를 들은 조피는 충격을 받고 칩거하다 죽었다. 비록 그녀보다 나중이지만 다른 아들인 [[카를 루트비히(1833)|카를 루트비히 대공]] 역시 위장병으로 일찍 사망했으며 루돌프 사후 후계자가 된 [[프란츠 페르디난트]](카를 루트비히의 아들) 역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서거하기 2년 전 [[사라예보 사건|사라예보에서 부인과 함께 암살당하는]] 바람에 프란츠 요제프는 또 다른 후계자를 찾아야 했다. 황실의 불행한 가족사도 그렇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을 앞두고 공적으로도 국제사회에서 이미 궁지에 몰릴대로 몰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마이어링 사건과 [[사라예보 사건]]으로 연이어 후계자들을 잃으면서 내적으로 심대한 타격을 입었고 외적으로는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 되어 멸망했다. 어떻게 보면 조피 대공비는 자신의 행동으로 가족들을 비극으로 내몰았고[* 특히 조피 대공비 때문에 조카이자 큰며느리인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엘리자베트 황후]]는 본인도 며느리인 [[벨기에의 스테파니]]를 냉대하고 황후로서의 의무도 내팽개치며 막내딸 [[마리 발레리 마틸데 아말리|마리 발레리]]를 제외한 남편과 자녀들에게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않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였고, 손자 [[루돌프 프란츠 카를 요제프|루돌프 황태자]] 역시 아무리 가족들에게 학대받고 사랑없는 결혼이었다지만 아내 스테파니와 어린 딸 [[엘리자베트 마리]]를 냅두고 여러 애인을 만들며 방황하다가 결국 그중 하나인 마리 폰 베체라와 동반자살해서 가정을 파탄내버린 [[가해자가 된 피해자]]로 전락했다.] 제국을 간접적으로 멸망에 몰아넣은 인물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도 서양에서는 고부갈등하면 떠오르는 악독한 시어머니의 대명사 같은 인물로 유명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